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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H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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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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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에 대하여

     ​알람이 귀를 때렸다. 귀가 아팠다. 지렁지렁 울려대는 음파들은 매일 아침마다 귀를 찢어왔기에 이제는 익숙할만도 했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해가 내 시야의 그늘막에 걸쳐 있을 시간대에, 나를 반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는 그 소리는 늘 새로웠다. 

     이상한 것은 알람을 맞추고 기상하기 시작하면 알람을 켜지 않은 날도 비슷한 시간대에 일단 일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알람을 설정하지 않고 그렇게 일어나면 아침 공기가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아마 그건 자의적 기상과 타의적 기상에서 오는 반응의 차이일 것이다. 자고 있을 때 우리는 가장 무방비한 상태에 놓인다. 장비도 수면 중에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가 자의적으로 잠을 자듯이- (물론 너무 피곤해 몸이 강제로 셧다운을 내릴 때도 있겠지만, 뇌와 생각과 자의식을 개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중 문제다)- 잠에서 깨는 것도 주체적으로 하길 본능적으로 원할 것이다. 

     인간이 원시 시대에 타의적으로 깨는 경우는 아침 햇살이나 장맛비 혹은 다른 인간이 깨웠을 때일 것이다. 모두가 자연적인 것들이다. 자연적이 것이 아닌 인공적인 것이 우리의 자의를 방해하는 것이 불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깨어 있을 때도 울리는 알람소리가 불쾌한데, 의식의 형상들 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상태에서 컴퓨터가 만든 규칙적인 불협화음이 그걸 찢어버리면? 그렇게 나의 영역에 쳐들어오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알람, alarm. alarming. 그 단어, 그리고 알람 자체가 누군가를 놀라게 한다는 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놀란 상태라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피가 더 빠르게 돌고, 근육이 더 빠르게 수축하고, 이완하고, 산소가 더 빠르게 온몸에 도달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는 잠을 잘 수 없다. 잠은 편안해야 한다. 따라서 알람에 놀라 일어난다면 그 많은 신체적 변화가 인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 일어나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건 자연이 인공을 극복하려 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인위적으로 일어나니 신체에 무리가 가, 자연적으로 그 짧지만 강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심신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시간에 뒤쳐지고, 시간에 쫓기고, 시간에 목을 맨다. 시간이 돈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시간과 같이 흘러갈 수 없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향해 우리를 밀어붙인다. 그 미래가 무서워 우리는 숨으려 한다. 현실은 너무 시간에 뒤쳐져 과거를 뒤돌아볼 수도 없다. 조금이나마 미화된 과거가 우리가 유일하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출구인데도 말이다. 

     오늘도 우리들은 알람 세개, 네개, 다섯 개를 맞추고 잔다. 알람 소리에 익숙해져 첫 알람이 울리면 눈을 한두 번 비비고 시간을 확인하다. 두 번째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몇 분간 시간에서 도망을 친다. 하지만 시간은 이내 겹겹이 쌓인 알람의 경단 속으로 우릴 다시 밀어넣는다. 몇 개의 알람이 울렸는지도 모를 즈음에 우리는 다시 현실 속으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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