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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윤동주문학관 / 환기미술관 / 이태원 가구거리 / 한남대교
대로변 사이에 끼워진 골목길들에는 서울의 결이 담겨져 있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인간적인 간격은 하나둘 모여 도시의 길이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는 가로질러 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되었고,
누구에게는 연인과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저마다의 기억이 담겨 숨쉬는 서울의 골목길을 나누고자 합니다.
매섭게 솟은 고층빌딩보다
낮은 건물들이 좋습니다.
층층이 쌓인 아파트보다
담벼락들 사이의 주택이 좋습니다.
따뜻한 정서가 녹아 있는 서울의 골목으로
필름카메라 하나 들고 돌아봤습니다.
- 윤동주문학관 -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인왕산 산기슭의 아파트에 물을 공급하던 수도가압장이 있었습니다.
아파트는 낡아 철거되고, 수도가압장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2012년 이 수도가압장은 윤동주 시인의 영혼을 재해석한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문학관으로 재탄생합니다.
'시인채', 그리고 두 개소의 물탱크를 활용한 제 2관과 3관에서 관람객들은
시 '자화상' 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물, 성찰 그리고 부활이라는 주제를 느끼게 됩니다.


1관인 '시인채' 에서는 '참회록'을 비롯한 자필로 쓰인 시인의 시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조금 가다듬어진 마음으로 2관에 들어서면 높게 탁 트인 하늘과 곧게 선 벽이 있습니다.
3관에는 시인의 시와 저항을 설명하는 영상이 재생됩니다.
문학관을 뒤로하고 청운동의 골목길을 따라 다음 목적지로 향합니다.
윤동주문학관
매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 코로나19로 인해 2, 3전시관 시간제 운영
02-2148-4175
- 환기미술관 -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인 김환기 작가는
윤동주 시인과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시인의 유고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의 1948년 초판본 이후에
1955년판이 새로 출간되었을 때,
김환기 작가가 표지 디자인을 맡았던 것입니다.
윤동주문학관이 남긴 글의 여운은 환기미술관의 그림의 여운이 됩니다.
이 여운들의 통로는 골목길입니다.



환기미술관의 공간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빛
김환기 작가의 작품은 모두 촬영 금지입니다.
방문하여 직접 작품을 눈으로 보고 느끼며 깊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미술관 건물은 한국 근대 건축이 빚어낸 걸작 중 하나입니다.
가장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면 산토리니의 주택에 들어선 느낌을 줍니다.
둥글게 일어선 천장은 구름같이 몽글몽글하게 마음을 저밉니다.
미술관을 나와 이태원 가구거리로 이동합니다.
환기미술관
매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02-391-7701
- 이태원 가구거리 -
이태원 가구거리는 골동품 가구 매매가 처음 시작되었던 곳입니다.
1960년대,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군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며 사용하던 가구를 처분하며 가구거리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이태원역에서 내리면 큰 길로 직진할 수 있고,
골목길을 통해 돌아올 수 있습니다.
골목길로 천천히 걸어 내려옵니다.
울퉁불퉁하고 비좁아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불편하기에 집중하고 신경쓰게 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골목길은 달라집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지고 온몸으로 공간을 느끼게 됩니다.
골목길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태원의 골목길은 청운동의 골목길과는 사뭇 다릅니다.
청운동의 고요한 공간이 주는 차분한 골목길과는 달리,
이태원의 골목길은 열정이 넘치며 왁자지껄합니다. 그 나름대로 또 좋습니다.
여러 문화와 사람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이태원의 골목길에 몸을 맡겨
서울의 꺼지지 않는 불빛과 열정을 잠시 느끼게 됩니다.




서울 골목길의 또 다른 매력은
지도 없이, 원하는 대로 걸어도 큰 길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큰 길과 큰 길을 살펴 동여매는 골목길은
서울이 선사하는 여러 매력 중 소소하면서도 인상적입니다.
이런 서울의 이음새들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한강의 다리들일 것입니다.
모두가 자동차와 대중교통으로 한강을 재빠르게 가로지르는 데 익숙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 바깥으로 지하철이 고개를 내밀면
시민 한두 명 역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쳐다보고, 누구는 사진도 찍습니다.
오늘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이 한강의 차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한남대교 걸어 건너기] 입니다.


- 한남대교 -
한남대교는 서울의 사대문과 강남, 경부고속도로를 잇는
서울의 중요한 교량 중 하나입니다.
1969년 ~ 1970년 사이 강남 개발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한남대교는 골목길에서 대로로, 대로에서 고속도로로 나아가는
네트워크를 상징합니다.
질주하는 차들을 옆에 두고 혼자만의 산책을 즐깁니다.
강바람이 일어 얼굴을 스치지만 야경의 깊음에 담뿍 빠져 이내 사라집니다.
고개를 돌리면 한 쪽엔 서울타워와 한남동, 이태원이,
다른 한 쪽엔 압구정, 신사동이 보입니다.
각자 다른 서울입니다.
그 서울의 이야기를 잇는 가교, 한남대교를 건너며
우리는 우리 각각의 서울을 그려냅니다.


도시는 차갑고 무정할 수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차들과 자욱한 연기,
이런 것들은 우리의 기억을 뒤틉니다.
하지만 골목길은
어쩌면 20년 전, 30년 전, 50년 전에도
보이는 그 모습 그대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골목길은 숨을 쉬고
잔잔한 침묵 속에 우리를 받아들여
서울을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필름카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이 복잡하고 사진을 받아들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대로변에 치여 사는 우리에게
골목길과 필름카메라는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를 줍니다.
가장 유행하는 곳,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곳, 이런 곳들이 아닌
가장 나와 가깝고 나만의 기억이 녹아 있는 곳이
진정한 여행지라 생각합니다.
거창한 준비물 필요 없이
추억과 설렘과 약간의 기대, 그리고 카메라 하나
서울의 골목길로 걸어 들어가 여러분의 서울을 기억해 보시면 어떨까요.
서울을 여행한다고 해서
마천루나 관광 성지를 여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것들만 본다면 서울 여행이 아니라
서울 '관람'일 것입니다.
삼국 시대부터 내려온 고향 서울은
너무도 깊고 아름답습니다.
한남대교에 서서 남산 너머 걸린 서울의 달을 맞으며
여행기를 마칩니다.


카메라
Rolleicord V (1954)
필름
Kodak Portra 800 / Rollei Crossbird 200 / Fuji 400H Pro / Ilford Delta 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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