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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H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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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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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

     도보 오른쪽의 매장들이 뿜어내는 몇 초간의 냉기는 나의 다리부터 목덜미까지 휘감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차가운 공기의 장막이 걷히고 찾아오는 것은 익숙한 열기와 습한 기운뿐이었다. 나는 그 짧은 환희를 또 느끼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른 매장을 지나칠 때 차가운 공기를 맛보지 못하자 약간 실망했으나, 그 다음 매장에서는 다시금 찬 기운을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지하철 출입구 근처로 다가갈수록 사람들은 더욱이 우거져 이동하였다. 깔때기를 통과하는 물처럼 사람들은 좁은 통로와 계단을 비비적대며 지나쳤다. 출구 앞에는 전단을 돌리는 이들이 있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단을 몸 앞으로 비집고 내미는 그 몇 초간 모든 사람들은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인생과 연관성이 없는 홍보지를 연민에 받아들 것인가, 혹은 바쁘게 치이는 일상에 작은 돌부리같이 굴러든 이 종이쪼가리 한 장을 내치고 가던 길을 갈 것인가.

 

     전단지는 홍보의 대상에서 아득히 벗어난 이들에게까지 그 자태를 드러낸다. 홍보요원들은 낚시 전 미끼를 뿌리는 마음으로 전단지를 들이민다. 악질 중의 악질은 손에 종이를 쥐여주기까지 한다. 이런 식의 홍보에 익숙한 이들은 계단을 다 올라오기도 전 저만치 아래에서부터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받을 손이, 또는 받을 의사가 없다는 것을 무언적으로 홍보요원에게 피력한다. 

 

     나 또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그건 단순히 홍보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개인적인 삶과 공간을 몇 초간이라도 반강제적으로 침해하려는 이들의 도전 자체가 불쾌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홍보 방법이 모두에게 피해가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상 생활을 영위하려는 자, 그것을 침해하려는 자 양측에 짧지만 강력한 감정 소비를 불러오고 기업 측에는 종이와 인건비 낭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지막 매장을 지나치며 찬 공기를 맛보지 못해서였으리라. 그런 사사로운 것들과 이 홍보 방식에 대한 원론적인 부정적 견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난 지하로 열린 입구를 타고 내려가 다시 개인적인 나의 일상으로 재빠르게 복귀하려 한 것이다. 

 

     지하철에 탑승하기 위해 역사의 스크린도어 앞에 서 있자 사람들이 차츰 몰려들었는데, 개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년층도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줄을 선다’ 는 개념의 부재가 노년층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가끔씩은 조용히 옆을 어슬렁대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득달같이 빈 공간을 차지해 자랑스럽게 그 자리를 지키고, 뒤에서 불편한 인기척이 느껴지면 헛기침 따위를 하며 자신이 쟁취한 왕좌에서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겐 나이가 사회적 권력과 직결되고 젊은 세대에 대한 불신은 당연한 것이며, 자신의 연륜과 지식은 옮다고 절대적으로 치부한다. 

 

     나는 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늙은 몸뚱아리들의 침입 시도가 느껴질 때마다 그들 발 옆으로 내 몸을 옮겨 밀착한다. 그러면 이들은 곁눈질을 반복하며 헛기침을 연신 해대는데, 이에 굽히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내가 정당히 얻는 사회적 규범에 따른 권리를 지키는 중 지하철이 역 내로 진입하면 이들은 더욱 불안해진다. 자신보다 젊은 이에게 첫 탑승권을 뺏긴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내 자리를 공고히 한다. 때로는 발을 뻗어 스크린도어 바로 옆으로 내 몸을 더욱이 붙이는데, 그럴 때마다 유리에 비친 그들의 당황한 표정이 백미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며 어수선해지는 순간에 승자는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내리는 승객을 발빠르게 확인하고 그와 동시에 지하철에 오르면 승리하는 것이다. 그건 일종의 확인과도 같은 것인데, 그런 작자들이 사회의 병폐와 낡은 관습이 한데 뭉친 것과 다름없으며, 미래를 선도하는 이는 현 세대인 것임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승리에 도취되어 지하철이 선사하는 냉기에 다시금 도취되려고 하는 찰나 역에 붙어있는 약냉방칸 스티커는 나에게 상실감을 가져다주었다. 승리의 찬 공기는 왜 이렇게도 미미한 것인가? 그러나 냉기를 찾아 옆 차로 이동하는 것이 귀찮았던 난 빈 자리에 앉으며 다시금 사회적 공간 속의 내 개인적 공간을 찾아냈다.

지하철, 2

     여름이 되어 나가보면 희한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작은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돌아다니며 더위를 이겨내려 궂은 노력을 하는 젊은층이다. 저마다 작은 이 선풍기를 들고 있는 그 꼴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내가 그들의 나이였을 때 그런 기계의 부재는 더위를 이기기 위한 다른 현명한 방책을 이끌어내었다. 한낮 소형 선풍기 따위에 의존하며 더위를 이겨보려 발버둥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 젊은 세대는 고통이 수반되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 그들의 연약한 정신력은 민들레 씨앗들과도 같아, 가장 약한 바람에도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한 줄기에 붙들어져 있으면 한 덩어리로 뭉쳐 떨어질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동하면 큰 힘이 되어 움직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누었을 때는 보잘것없는 것이 젊은 세대의 현주소이다. 민들레 홑씨처럼 그렇게 힘없이 날아갈 경우 소속감을 상실하기 마련이며, 생존의 여지 또한 없어질 터이다.

 

     그렇게 나는 이 홑씨 무리들을 뒤로하고 지하철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갈 이들은 내려가고, 올라갈 이들은 올라갔다. 그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있는 노숙자가 있었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 존재였다. 어쩌면 올라갈 수는 없고, 내려가긴 싫었을리라. 얼굴을 얼핏 흝어보니 나와 비슷한 동년배로 보였다. 

 

     순간 난 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알아채고 황급히 다시 얼굴을 폈다. 그건 그런 이들을 보기만 하면 나타나는 반사작용 같은 것이었다. 나이대가 비슷함에도 너무도 다른 생활 수준 차이에서 나오는 동정이라기보다, 저자들이 우리 세대 전체를 욕보인다는 부끄러움이 더 큰 것이다. 저런 행위는 집단을 자발적으로 이탈한 자들이 겪는 최후이다. 사회적으로 그 권리와 지위를 박탈당해 마땅한 행위이다.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겉돌면 전체에게 병폐를 끼치게 된다. 그건 마치,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서, 혼자만 화음에 어긋나는 연주를 하는 것이다. 자의적으로 부여한 독립성은 독립이 아니라 전체로부터의 낙오와 고립에 가깝다. 그러고는 한다는 것이 이도저도 가지 않고 집단을 흡혈하는 것이다.

 

     시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암적인 존재로 회귀하는 것만큼 악질적인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라 생각하며 나는 승강장으로 다시 내려갔다. 

 

     시간대에 비해 비교적 한적한 승강장으로 들어서자 지하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서둘러 항상 서는 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문에 탑승하면 내릴 때 바로 올라가는 계단과 조우할 수 있었다. 그 정보는 내가 다년간 지하철을 이용하며 축적한 연륜을 통해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문 앞에 한 청년이 어정쩡하게 서 있는 꼴은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자에게서는 사회에서의 경험이나 집단생활의 규범 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한 수 가르쳐주기 위해 옆으로 다가가 나지막히 헛기침을 했다. 그건 일종의 신호였다. 사회적 경험이 더 높은 이들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그렇기에 은유적으로 더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신호인 것이었다. 그리하면 약자들은 슬그머니 피하고 집단생활의 이상적 적자생존의 법칙을 재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자는 달랐다. 그 무언의 신호를 모른다기보다, 그 메세지에 대한 답장으로 조소를 보내듯이 내 옆으로 가까지 밀착했다. 이건 쿠데타였다!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우둔하게 육체를 이동해 밀어붙이는 아우성이었다. 나는 순간 놀라 헛기침을 하며 비킬 수밖에 없었다. 분명 방금 일어난 그 일련의 순간들로 이 젊은이는 승리의 탄성을 속으로 내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자는 불안하다. 자신의 승리가 다른 도전자에게 뺏길 것만 같아 불안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따라서 내가 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응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었다. 홀로 싸우는 것만큼 자신은 처절하지만 주변이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꼴은 없으니까. 

 

     머지않아 지하철이 들어왔고 혼란스러운 젊은이는 서둘러 탑승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보았자 이도저도 아닌 집단 외의 낙오자일 뿐이다! 이자는 점진적으로 파괴될 것이다. 나와 같은 이들이 이끄는 사회에서는 저렇게 다수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하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럼 그들은 갈 곳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찬 냉소에 가득 찬 엷은 미소를 띄고 들어가는 날 반긴 것은 만석의 노약자석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일종의 허무감을 느꼈으나, 이내 그 짤막한 감정의 찰나를 떨쳐내고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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